접시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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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조말선
접시 위의 바다처럼 포장품이 왔다 접시 위의 계란처럼 포장품이 왔다 접시 위의 촛불처럼 접시보다 불안한 포장품들이 접시를 위험에 빠뜨릴 포장품들이 친친 테이프에 결박당해서 왔다 도서라고 분류되었다면 불꽃일 수 있는 포장품 유리라고 분류되었다면 흉기일 수 있는 포장품 자연이라고 분류되었다면 이미 훼손된 포장품 냉동이라고 분류되었다면 시체일 수 있는 포장품 케이크라고 분류되었다면 접시만 남는 포장품 접시에 굴러떨어질까봐 접시에서 굴러떨어져서 죽은 몸이 한번 더 죽을까봐 빈 구멍마다 흰 솜을 꽉꽉 틀어막고 접시 위의 눈사람처럼 포장품이 왔다
얼띤感想文
접시는 그릇의 일종이다. 딱딱하고 굳은 물건으로 무엇을 담는다. 접시의 근원은 흙이다. 며칠 전 읽은 시 ‘투각透刻’에서 칼로 흙벽을 도려내다 쓸모없이 쓸쓸해서 그림자를 숟가락으로 떠낸다는 표현이 언뜻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굳이 한자를 빌려 쓰자면 접시楪匙, 일종의 차차어다. 고금석림古今釋林에 의하면 東韓譯語, 釋器라 한다. 그러니까 접시는 순우리말이다. 흙처럼 흐물흐물하거나 흘러내린다면 일은 제대로 할 수 없다. 접시는 하나의 표상이다. 그 접시 위에 바다처럼 달걀처럼 촛불처럼 포장품이 떠 있는 그곳은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시적 객체를 대변한다. 테이프처럼 결박당한 언어장벽과 도서처럼 산발적으로 물 위에 뜬 물고기 같은 흉기는 이미 훼손된 마음을 대변한다. 우리의 속담에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다. 처지가 몹시 곤궁하고 답답함을 이르는 것이다. 접시, 밥도 담을 탓이다. 그릇이 작더라도 담는 솜씨에 따라 많이 담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좋지 아니한 조건에서도 솜씨나 마음가짐에 따라서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겠다. 접시에 빠져 죽는 이 접시에다가 한술 밥이나 퍼 담아보는 일도 하루 괜찮은 마음 수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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