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나는 의자 / 오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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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의 아침을 여는 詩]
물이 나는 의자 / 오채운
그 방에는 서해를 향한 창이 있다
처다보면 멀게 느껴지고
앉아보면 물이 쏟아지는 의자가 있다
울컥 내 몸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자가 있다
이미 의자를 떠난 사람을 가슴에 품고
물속에 잠겨야 하는 의자가 있다
의자는 편안하다
의자는 가라앉는다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서해가 넘실 창을 넘어와 방 안 가득 들어찬다
바다와 눈물이 섞이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의자와 함께 물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만 가라앉는다
이 밤에도
—시집, 『모레를 먹고 자라는 나무』
[시 감상] 슬픔이라는 이름의 가구
슬픔은 때로 가구의 형상을 하고 우리 곁에 머뭅니다. 이 시에서 '의자'라는 단어를 마주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아는 평범한 가구가 아닙니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 온기를 붙잡고 있는 자리, 혹은 차마 비워내지 못한 마음의 거처가 됩니다. 오채운 시인은 그 마른 의자 위에 눈물인지 바다인지 모를 축축한 물을 채워 넣습니다.
"서해를 향한 창이 있다"는 첫 문장은 이미 이 시의 정서를 예고합니다. 멀리 두고 바라보고 싶지만, 결국 방 안 가득 밀려들어 오고야 마는 서해의 물결처럼 슬픔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당도합니다. 거리를 두려 애쓸수록 오히려 더 깊숙이, 발목을 적시며 스며드는 법이지요.
특히 "이미 의자를 떠난 사람을 가슴에 품고"라는 구절은 읽는 이의 마음을 멈춰 세웁니다. 부재하는 이를 품은 의자,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아 함께 젖어가는 몸. 이는 '상실'이 단순히 비어 있음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물처럼 우리를 짓누르는 실체임을 보여줍니다.
이 시가 지닌 비극의 정점은 '저항의 부재'에 있습니다.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발버둥도,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손짓도 없습니다. 그저 의자와 함께, 물과 함께 고요히 아래로 가라앉을 뿐입니다. 이 침착한 체념은 그 어떤 비명보다 서늘하고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마지막 문장인 "이 밤에도"는 낮게 읊조리듯 놓여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침잠이 오늘 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시인은 같은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서글픈 예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슬픔, 그것이 바로 이 시가 응시하고 있는 고독의 진짜 얼굴일 것입니다.
(글 / 양현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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