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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근 시인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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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 / 나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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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6-05-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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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근의 아침을 여는 ]


매혹(魅惑)  / 나금숙

 

보라는 등 뒤에 숨는 울먹한 색이다

드러나기를 두려워한다

창고 옆 수국꽃 그늘 아래

묻어 둔 편지처럼 수줍다

흔들리는 등꽃 아래 누워 자던

너의 흰 이마에 드리우던 반그늘

일몰 무렵 긴 열차

차창 너머 산 어스름

한때 이런 처연한 빛을 보면

구름 위를 걷듯 세상이 막연해지곤 했다

사랑도 손에 쥐어져야 느껴지는 이쯤에도

보라는 여전히 매혹이다 언제 보아도

뇌수가 향방 없이 뭉클 쏟아지려 한다

오래 기다린 그대 등을 얼핏 보는 것 같다

더 기다려도 될 것 같다

한번만...조금만...이라고 되뇌다가

언제든 떠나도 될 것 같은,

돌아와도 떠난 흔적이 없는 나라,

보라국() 보라 백성들

잘 섞여진 기쁨과 슬픔의 빛

종아리 쯤 닿는 맑은 시냇물 속을 걷듯

붙잡지만 또 잘 보내주는 인연들

 

 

[감상]

 

보라색 그늘이 길어 올린 기다림의 결

 

나금숙 시인의 매혹보라라는 색채를 매개로, 기다림과 사랑, 그리고 떠남과 귀환의 감정을 섬세하게 길어 올린 작품입니다. 보라는 이 시에서 단순한 색이 아니라, 드러나기를 망설이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진동으로 기능합니다.

 

보라는 등 뒤에 숨는 울먹한 색이다라는 첫 행은 이미 색채에 감정을 부여합니다. 보라는 전면에 서지 못하고 등 뒤에 숨지만, 그렇기에 더 오래 남는 색입니다. 창고 옆 수국꽃 그늘, 흔들리는 등꽃 아래의 반그늘은 말해지지 못한 사랑의 자리이며, 일몰 무렵 열차 창밖 어스름은 지나간 시간의 잔광처럼 번져 갑니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보라국()’이라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그곳은 돌아와도 떠난 흔적이 없는 나라”, 곧 떠남과 귀환이 서로의 상처를 지우는 세계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잘 섞인 빛, 붙잡되 또 잘 보내주는 태도는 성숙한 사랑의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도 손에 쥐어져야 느껴지는 이쯤에도라는 구절은 오늘의 세계를 환기합니다. 소유로 확인하려는 감정의 방식 속에서도, 시인은 여전히 매혹을 믿습니다. 그것은 소유 이전의 떨림이며, 오래 기다린 이의 등을 얼핏 보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마지막 연의 붙잡지만 또 잘 보내주는 인연들은 이 시의 정조를 단정합니다. 집착과 초연의 경계에서 사랑은 더욱 깊어집니다. 종아리에 닿는 맑은 시냇물을 걷듯, 인연을 붙잡으면서도 기어이 놓아주는 태도그 절제가 이 시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습니다.

보라는 결국 상처와 기쁨을 함께 품는 색입니다. 나금숙 시인은 그 빛을 통해, 우리 안의 오래된 기다림을 조용히 흔들어 깨웁니다.

 

(/ 양현근 시인)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 매혹(魅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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