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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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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323회 작성일 26-03-17 19:58

본문



  제목 있는 삶




  시 속에서 살다

  현실로 걸어나온 물푸레나무와

  순천에서 시외버스 타고 왔던 프리지어는

  장산 밑 재송동에서 시내버스 타고 온

  군자란과 제라늄과 고무나무

  그리고 사직동에서 지하철 타고 온

  안시리움과

  함께,

  세월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누추한, 부부의 낡은 거실

  긴 거울 곁 나무로 만든 탁자 위에서

  착한 화분들이

  구석엔 화장품 몇 개 올려 둔

  좁다란 거기서 해처럼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가슴이 따끔거리던 밤

  아무도 없이 멍하던 저녁

  아내의 눈물이 빗물처럼 흐르고,

  창자에 구멍이 나던

  이별의 그 늦은 아침에도

  거기서 살았습니다



  왜 그래

  왜 마음이 무너진 거니

  물어도

  아무런 대답 없이 떠나던 이파리들을

  빈 표정으로 지켜보던 푸르른 이름들이었구요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기고

  또 포스트잇에 메모를 남겨도

  대답 없던 이파리들

  청태 같은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찌르고

  모조리 베어버린 후 진물만 고인 영혼

  말씀의 생각 속에서 거닐던

  초록의 차분함은

  가시 솟은 섬망에 흐트러지고

  고름의 생각들은

  홀로 남겨진 광합성의 약속마저

  밀어내고 있었던 게지요

  남몰래



  제목 없는 이별

  뒤

  제목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남은 나무들이 있었구요



  모든 미움이 나를 향할 때에도

  사랑은 진리를 살아내게 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는

  힘이라 배웠습니다



  잠 못 이룬 밤 지나

  아침 출근 전 거울을 바라보다가

  문득 화분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말없이 말을 건네 옵니다

  그 어떤 사욕의 표정도 없습니다

  그저 죄없이 푸르를 뿐



  그러니 쉬운 눈물 따윈 흘리지 않을 겁니다

  언제까지고

  견고한, 말씀 옆에 서 있을 테니깐요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profile_image 수퍼스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랫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시인님.
제목이 있는 삶,
사물을 통해 좋은 제목에 어울리는 좋은 시를 참 곱게도 빚으셨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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